[KR] 정보를 믿기 전에 한 번 더 묻는 일
내가 아는 정보와 AI가 아는 정보가 다를 때가 정말 많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 40년 동안 건강식을 만들고, 직접 발로 뛰며 실험해온 사람의 제자분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운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난 후 미국에 와서 다시 만들려고 하니 세부적인 과정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ChatGPT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ChatGPT의 답변은 내가 배운 내용과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 만들면 썩을 수 있고, 기대했던 발효나 변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상해서 일단 전문가 분에게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맞냐고 묻고, 다시 ChatGPT에게 돌아가 그 대답에 대해 반문하기 시작했더니 ChatGPT는 갑자기 내 말이 맞다는 식으로 답했다. 나는 그 순간 의문이 들었다. 대체 무엇이 맞는 걸까?
이러한 경험들 이후 나는 AI를 사용할 때 더 조심스러워졌다. AI는 단순히 진실 하나를 꺼내주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어떤 전제를 가지고 질문하느냐에 따라 다른 방향의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질문에 포함된 단어 하나, 조건 하나, 맥락 하나가 답변의 방향을 바꾼다.
이 지점은 온라인 정보 환경 전반의 문제와도 닿아 있다. Machete와 Turpin은 가짜뉴스에 관한 문헌고찰에서, 온라인 정보가 많아질수록 중요한 것은 정보를 접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그 정보의 신뢰성과 논리성을 평가하는 비판적 사고라고 지적한다. 그들이 검토한 연구들 역시 사람들이 진짜 뉴스와 가짜뉴스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Machete & Turpin, 2020, pp. 244–245).
요즘 나는 AI를 주로 그런 방식으로 사용한다. 생각을 요약하거나, 막연한 감각을 구체화하거나, 내가 가진 문제의식과 비슷한 자료를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물어보는 질문의 대부분은, 지금 내가 쓴 글을 '매끄럽게 다듬어줘' 혹은 '비판점을 알려줘.') 하지만 AI가 제시한 자료를 읽고, 무엇이 더 타당한지 판단하는 일은 결국 내 몫으로 남겨둔다. AI는 사고를 대신해주는 도구라기보다, 사고를 정리하고 확장하게 도와주는 보조 도구에 가깝다.
요즘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과학’이나 ‘팩트’라는 말도 조금은 경계하게 된다. 과학이나 팩트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말이 너무 쉽게 사용될 때를 경계한다. 어떤 사람이 “이건 과학적으로 맞다”고 말할 때, 그가 실제로 충분한 근거를 검토했는지, 아니면 인터넷 검색이나 AI 답변의 일부를 가져와 자신의 주장에 붙이고 있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가 해부학 수업을 들을 때부터 나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우리가 지식, 과학, 팩트라고 믿는 것들은 언제나 단순하고 절대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어보면 어떤 사람은 이것이 맞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저것이 더 과학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한다. 의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치과나 정형외과처럼 진단과 치료 방향이 다양하게 갈릴 수 있는 분야에서는 병원마다 다른 설명을 듣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견이 똑같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과학이 절대불변의 진리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과, 아무 의견이나 과학이 될 수 있다는 말은 다르다. 과학은 오히려 다양한 가설과 근거들이 검토되고, 반박되고, 수정되는 과정 속에서 더 나은 결론에 가까워진다. 학술 토론장에서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는 것도 결국 그 과정의 일부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누가 맞고 틀렸는지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근거가 더 충분한지, 어떤 설명이 더 넓은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지 따져보는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이 과정이 자주 생략된다. 어떤 지식을 깊이 파고들기보다 단면만 보고, 자신의 주장을 곧바로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지식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가 된다. 논리적인 대화는 사라지고, “내가 더 맞다”는 식의 에고 싸움만 남는다. 과학이라는 말이 오히려 생각을 멈추게 하는 권위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먼저 직접 살펴보고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을 접했을 때 그것이 내 안에서 어떤 의문을 일으키는지 살펴보고, 관련 자료나 논문, 전문가들의 서로 다른 의견을 찾아본다. 그다음 생각을 정리한다. AI는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최종 판단까지 맡기지는 않는다. ~ 의 과정으로 얻은 생각 역시 완전한 진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이해한 지식이 언제나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다만 적어도 내 삶의 조건과 가치관 안에서 더 신중하게 검토된 지식으로 쓰일 수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으니 진실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건강, 의학, 식품 안전처럼 실제 위험이 따르는 영역에서는 개인적인 감각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만 객관적인 근거를 살피는 동시에, 그 지식이 내 삶의 맥락 안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과학적 지식도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판단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하나의 정보가 어떤 사람에게는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조건과 맥락 속에서 조정되어야 할 수도 있다. 이것은 건강이나 의학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정치, 문화, 사회현상에 대한 의견과 진단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진리나 과학이라고 믿어온 것들도 누가 말하느냐, 어떤 맥락에서 말하느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전달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국민의 교육을 책임지는 역사 교과서조차 시대마다 논란이 되고, 개정되고, 다시 해석되지 않는가. 어떤 정보는 그 자체로 중립적인 사실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선택되고 배열되고 전달되는 방식 안에는 언제나 관점이 개입된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정보에 대한 의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가 말했다고 해서 곧바로 믿는 것도 위험하고, 반대로 전문가의 말을 무조건 불신하는 것도 위험하다. 필요한 것은 맹신도 냉소도 아니다. 이 정보가 어떤 근거 위에서 나온 것인지, 어떤 맥락에서는 유용하고 어떤 맥락에서는 한계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는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는 태도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보의 다원성, 다시 말해 하나의 정보가 여러 맥락 속에서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모든 정보를 똑같이 믿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정보들을 비교하고, 근거의 질을 따지고, 그것을 내 삶 안에서 어떻게 책임 있게 사용할지 고민하는 태도에 가깝다.
함께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네이선 밸런타인(Nathan Ballantyne)은 「Epistemic Trespassing」에서 중요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자기 분야의 경계를 넘을 수밖에 없지만, 그 경계를 혼자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Ballantyne, 2019, pp. 389–390). 내가 모르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식과 관점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결국 정보의 다원성은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하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전문성과 경험을 연결하며 더 신중한 판단에 가까워지려는 태도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답을 빨리 얻는 것이 아니라, 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다. AI가 주는 답도, 전문가가 주는 설명도,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팩트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한 번 더 묻는 것, 이 정보는 어디서 왔는가. 어떤 조건에서 맞는가. 무엇을 설명하고, 무엇을 설명하지 못하는가.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왜 이 정보를 믿고 싶어 하는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판단력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논문 1 Ballantyne, Nathan. “Epistemic Trespassing.” Mind 128, no. 510 (2019): 367–395.
참고논문 2 Machete, Paul, and Marita Turpin. “The Use of Critical Thinking to Identify Fake News: A Systematic Literature Review.” In Responsible Design, Implementation and Use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235–246. Springe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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