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 그리움 혹은 약간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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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 내 상태가 좀 이상했다. 한국에서 그릇 몇 개와 차를 와다다 주문해서 엄마한테 보내달라고 했고, 본격적으로 임신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내추럴 와인 두 병을 꼭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결국 사왔다. (뭐 그릇이나 차는 원래 좋아했지만, 와인 두병을 한꺼번에 산건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다.) 요새는 술을 자주 마시는 편도 아닌지라 … 사놓고도 꽤 마음이 불편해서 나를 잘 들여다봤더니 사실 내가 요새 간절히 원하는 게 따로 있었다… 그릇이나 차나 와인 자체라기보다 그것들이 가진 어떤 분위기나 그것들이 있을 법한 한국의 공간과 사람을 간절히 원했던 것이었다. 연희동 혹은 서촌의 조용한 식당에 들어가 혼자 투박한 그릇에 담긴 정갈한 식사를 하고, 내추럴 와인을 천천히 마실 수 있던 어느 공간…. 적당한 말소리와, 굳이 힘주지 않아도 취향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고즈넉함… 친구들의 축축한 목소리 하지만 점점 서로의 빛에 바짝 말라 어느새 빳빳하게 고개를 드는 그 맑은 목소리… 내가 그리워 하는 공간들은 뉴욕에서는 지나치게 번쩍이고 소비적인 분위기 안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Fancy한 동양 분위기의 찻집, 중산층 부부가 데이트 코스로 먹을법한 삐까뻔쩍한 채식 음식 식당…. 그리고 들리는 수많은 언어들… 사람들에 둘러싸여 같은 그릇에 같은 식사가 나와도 내가 원하는 건 이런게 아니라는 생각만 든다. 여기 살면 살수록 점점 더 그 Gap을 크게 느끼게 된다.
2
며칠 전에는 정말 사랑하는 Anna Roxanne의 공연을 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다녀왔다. 공연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브루클린이라는 공간이 갑자기 너무 낯설고 버겁게 느껴졌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그곳을 힙한 아티스트들의 동네,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장소처럼 생각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공간이 ‘구경하는 도시’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블록마다 다른 언어가 들리고, 사람들의 말소리와 움직임이 계속 몸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공연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오히려 그 대비가 더 크게 느껴졌는지 공연이 끝난 뒤 나는 거의 도망치듯 뉴욕 거리를 뛰어다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이상할 정도로 집 생각만 했다.
집
집
집
제이비
뚜두
집 제이비 뚜두
집 …
2시간 내내 아무것도 생각안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저 세 단어만 떠올렸다..
3
미국에서는 늘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추측하거나 긴장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처음 왔을 때는 아무 말도 못했는데, 이제는 애매하게 알아듣기 시작해서 오히려 더 피곤하다. 사람 표정과 분위기를 읽고, 말뜻을 추측하고,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까지 신경 쓰다 보면 대화 한 번에도 기운이 다 빠진다. 원래도 사람 한 명 만나면 너무 많은 걸 읽어내는 편인데, 여기서는 그걸 영어로까지 계속 해야 하니까 가끔은 도시 전체가 과부하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밖에 나가 있다가도 자꾸 집만 생각난다. 집… 이상할 정도로 그 생각만 반복된다. 삶은 분명 안정적이고 행복해졌는데, 오히려 그래서 이제야 내가 얼마나 긴장하면서 살아왔는지를 알아차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제이비와 뚜두가 너무 따뜻하고 완벽한 가족처럼 느껴져서, 그 안정감 속에서 내가 바깥에서 느끼던 낯섦과 피로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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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태를 그냥 받아들이고 싶다.
아 내가 지금 이렇구나. 이런 상태에 있구나.
지금 상태가 그리움이고 가끔은 약간의 괴로움일지라도 그것을 천천히 잘 알고 받아들이고 잘 느껴서 통과하고 싶다.
나아지려 애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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