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 가스통 바슐라르 - 공간의 시학 (1958)


『공간의 시학』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이상하게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었다. 

철학책을 읽을 때 나는 긴장하게 되는데.. 대체로 삶의 불안, 자유의 책임, 타인과의 갈등, 세계의 부조리처럼 인간을 압박하는 주제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방향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바슐라르는 인간을 먼저 세상과 싸워야 하는 존재로 보지 않고, 보호받고 머무르며 꿈꾸는 존재로 바라본다. 그 시선이 내게 큰 안도를 주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집, 방, 서랍, 구석, 조개껍질, 새집 같은 작은 공간들을 중요하게 다루는 방식이었다. 내가 그러한 이미지에 관심이 많은 이유를 알게 되었고, 그러한 지나칠 수 있는 작고 미세한 공간이 사실은 인간의 내면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설명이 마음에 남았다…. 계속 그러한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조개껍질의 모순, 외부에 있어서는 때로 그토록 거칠고 내밀한 내부에 있어서는 그토록 부드럽고 그토록 진주빛으로 빛나는 조개껍질의 모순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 윤이 어떻게 연체의 존재의 마찰로써 얻어질 수 있단 말인가? 조개껍질 속의 내밀한 진주모를 문지르며 꿈을 꾸는 손가락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꿈을 넘어서는 게 아닌가? 가장 단순한 사물들도 때로 심리적으로는 복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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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들이 정녕 우리들 꿈의 원초에 있다면 세계의 적대성을 알지 못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삶이란 잘 자고 있는 가운데 시작되는 것이며, 새집들 속의 모든 알들은 잘 품어져 있는 것이다. 세계의 적대성에 대한 경험은 그리고 따라서 우리들의 방어와 공격의 꿈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 배아에 있어서 모든 삶은 안락이며, 존재는 안락으로 시작된다. 새집을 관조하는 가운데 철학자는 세계와 평온한 존재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명상을 계속하며, 평온을 얻는다. 그리하여 그의 몽상의 절대적인 소박성을 오늘날의 형이상학자들의 언어로 표현하면서 몽상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세계는 인간의 새집이다. 세계는 새집이다. 가없는 힘이 세계에 있는 존재들을 그 새집 속에서 지켜준다. 헤르더는 그의 저서 히브리 시사에서, 가없는 땅에 지탱되어 있는 가없는 하늘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대기는, 그의 집에 몸을 지탱하고 새끼들을 따뜻하게 품고 있는 비둘기이다.'
-146p


나는 거대한 장소보다 오히려 작고 따뜻하며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데, 바슐라르는 그런 감각을 진지하게 다루며, 인간이 왜 쉼터를 필요로 하는지 시적으로 설명한다.

어린 시절에는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컸기에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끌린 적도 있었다. 자유, 선택, 책임,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 같은 주제들은 당시의 나에게 강하게 다가왔다.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삶의 무게와 현실을 조금씩 경험하면서, 이제는 다른 종류의 철학이 더 깊이 와닿는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만큼이나 머물 수 있는 공간, 버텨낼 수 있는 안정감, 조용히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편안함’ 역시 중요한 철학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강함, 자유, 성취, 경쟁 같은 가치들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는데 바슐라르는 인간에게는 쉬는 시간, 안쪽으로 물러날 공간, 조용히 상상할 장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수록 이해받는 기분이 크게 들었다. 

이 책은 단순히 공간에 대한 책이 아니라, 인간 근원의 마음과 몸은 어떻게 위로받는 존재인지 알려주는 책이다. 읽는 동안 편안하고 아늑했다… 



우리의 견지에서, 이미지의 시원으로써 살아가는 현상학의 견지에서 본다면. 존재가 '세계에 내던져'지는 순간에 성찰의 입장을 마련하는 의식의 형이상학은 이차적인 형이상학에 지나지 않는다. 그 순간에 앞서 존재가(있음이) 바로 안락(잘 있음)인 예비적인 단계, 인간 존재가 안락의 상태, 존재에 원초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그 안락 의 상태에 놓여지는 그러한 예비적인 단계를 그 형이상학은 지나쳐 버 리는 것이다. 의식의 형이상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존재 가 밖으로 내던져지는, 즉 우리가 지금 고찰하고 있는 이미지들에 의한 표현 방식으로 말한다면
문 밖으로, 집의 존재 밖으로 내쫓아지는 경험, 인간의 적의와 세계의 적의가 쌓여 가는 그러한 상황의 경험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포괄하는 완 전한 형이상학은 내부에 가치의 특권을 허여해야 한다. 존재의 내부에, 내부의 존재 안에, 따뜻함이 존재를 맞아들이고 감싸는 것이다.
알맞은 물질의 아늑함 가운데 녹아들어 존재는 말하자면 일종의, 물질의 지상낙원 안에 군림하는 것이다. 그 물질적인 낙원에서의 존재는 자양분 가운데 잠기며 본질적인 일체의 이로운 것들로 충족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라벤더와 더불어 장롱 속에는 또한 계절의 역사가 들어간다. 라벤더는 그것만으로, 시이트들이 쌓여 있는 시간적인 서열에 베르그송적인 지속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사용하려면, 그것들이 이전에 우리 고장에서 하던 말대로 충분히 라방데 되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는가? 평온했던 삶의 나라를 회상하면, 평온했던 삶의 나라로 되돌아가면, 얼마나 많은 꿈들이 저장되어 있는가! 기억속에서 레이스 장식품들과 삼베, 모슬린 천의 옷들이 한결 거친 옷들 위에 포개어져 놓여 있는 장롱의 선반을 다시 볼 때, 수많은 추억들이 떼지어 몰려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말에는 아름다운 사물이 대응 되는법이다. 장중하게 소리나는 말에 대응되는 것은 깊이 있는 존재이다. 가구의 시인이라면 누구나 지붕 빝 방에 사는 시인, 가구가 없는 시인일지라도 오래된 장롱속의 공간은 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장롱 속의 공간은 내밀함의 공간, 누구에게나 열리지는 않는 공간인 것이다. 


베르나르 팔리시의 몽상은 거주의 기능을 촉각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조개껍질은 전혀 육체적인 내밀성의 몽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배적인 이미지들은 서로 결합하는 경향을 가진다. 베르나르 팔리시의 넷째번 명상실은 집과 조개껍질과 동굴의 종합이다: '그것은, 안이 너무나 훌ㄹㅇ한 솜씨로 쌓아올려져, 바로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 커다란 바위의 속을 파내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 방은 돌기처럼 솟아오른 부분들과 비스듬히 둥글게 파여 들어간 부분들이 있어서 뒤틀리고 울퉁불퉁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형태의 새김이나 새김의 흔적도 지니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인간긔 손의 작업을 거치지 않은 것 같을 것이다. ... 그것은 휘감긴 조개껍질 모양의 동굴일 것이다. 엄청난 인간의 노력을 들임으로써 그 꾀바른 건축가는 그것을 하나의 자연적인 거소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290p


상자 속에는 잊지 못할 물건들이, 우리들에게 잊지 못할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우리들의 보물을 줄 사람들에게도 잊지 못할 그런 물건들이 있다. 그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응집되어 있다. 그리하여 상자는 기억을 넘어서는 것의 기억이 된다. - 215p



그의 회고록에서 자신이 권태로워한, 눈물이 날 정도로 권태로워한 어린이였다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가 그렇게 권태로워 울고 있는 그를 발견했을 때. 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뒤마가 왜 울고 있을까?
눈물이 있으니까 울지.

여섯 살의 어린이는 그렇게 대답하곤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그야말로 회고록 같은 데서 이야기하는 일화의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 만 이 이야기는 절대적인 권태, 놀이 친구가 없다는 사실과는 관계없는 그런 권태를 얼마나 잘 보여주는가! 그것은, 놀이를 떠나 혼자 곳간의 구석으로 가서 하릴없이 앉아 있는 그런 어린이들의 권태인 것이다.
내 권태의 곳간이여, 나는 복잡한 삶이 일체의 자유의 싹을 내게서 빼앗아 가곤 했을 때, 얼마나 여러 번 너를 아쉬워했던가!
이리하여 우리들이 태어난 집에는 일체의 실증적인 보호적 가치들을 넘어서서 꿈의 가치들이, 그 집이 이젠 존재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최후의 가치들이 자리잡는다. 권태의 중심들이, 고독의 중심들이, 몽상의 중심들이 한데에 모여. 우리들이 태어난 집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추억들보다 더 지속적인 꿈의 집을 형성한다. 그 모든 꿈의 가치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추억들이 뿌리박고 있는 그 꿈의 땅의 깊이를 말하기 위해서는, 오랜 현상학적 연구가 필요하리라. -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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